물극필반(物極必反), 차면 넘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말이다. 윌가 주식을 사고파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주식은 가격이 정해진 물건을 슈퍼에서 사는 일과는 달리, 마치 경매처럼 소비자 스스로가 가격을 정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주식 투자자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고, 패자의 나약함을 보이며 손톱을 물어뜯기만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기준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식투자를 통해 연 20% 이상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올린 사람은 전 세계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고,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수익을 냈더라도 장기적으로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죽고 금융회사가 사는 이유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평균을 넘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바닥을 열심히 배운다고 해서 누구나 이창호나 조훈현 같은 최강의 고수가 되는 건 아님을 알고 있다.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다고 해서 황영조나 이봉주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워런버핏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주식시장의 아이러니다. 세상은 거대한 거짓말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영화 <씬 시티>에서 주인공은 "실제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돈도 배지도 아닌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는 중요한 통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규율도 모두 거짓말 투성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종종 권력을 창출한다. 정치인은 온갖 화장술을 동원해 자신의 무능과 탐욕을 감추려 들고, 대중은 그들의 기만 섞인 연설과 몸짓을 보며 그들이 우리 세상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심지어는 케네디, 처칠, 박정희가 역사를 발전시켰다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믿는 대중의 힘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대중 승리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 체제는 국민들을 속인다. 국가는 항상 무엇인가 노력하고 있고 국민민복을 위해 일로매진하고 있으며 경제는 항상 좋다. 경제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기를 감추기 위한 기만이거나 이미 경제가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국가가 발표하는 모든 통계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 잡기 위해 가공되고, 정부 대변인의 발언은 부실기업의 재무제표에 달린 주식만큼이나 복잡하다. 기업은 어떤가. 그들은 늘 나아지고 있으며 위기는 항상 일시적이다. 기업이 스스로 위기라고 말한다면 노동조합을 압박하거나 배당을 덜 주려는 음모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조만간 망하게 생겼다는 의미다. 기업이 파는 물건은 교묘하게 하자가 감추어지고, 소비자의 권리는 기업의 이익 앞에 무력하다. 실적 발표는 늘 합법과 탈법 사이를 오가고, 기업의 IR은 교묘하게 편집된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은 늘 그것을 받아 적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기업은 광고를 통해 언론을 길들이고, 언론은 특정 기업의 광고비를 조금이라도 더 빼앗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과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언론은 기사를 써서 죽이고, 기사를 빼서 죽인다. 논조는 언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독자는 그 결과를 사회적 공기의 합리적 시선으로 오해한다. 언론과 기업, 정부는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며 길항하고 상승한다. 그 과정에 그들의 거짓말은 거대한 허상을 만들고, 이렇게 삼자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말은 거짓 권력을 지탱한다. 금융시장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금융기관은 당신을 속인다. 그들이 내세우는 '신뢰와 믿음'이라는 말도 사실은 당신에게 거짓말을 들키지 않을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상징이다. 은행은 소액을 맡기는 당신에게 눈곱만큼의 이자를 지불한다. 그리고 1%도 안 되는 예금이자를 받고도 불만을 표시할 수 없도록 이체수수료나 대출금리 할인과 같은 사탕을 내놓는다. 고작 0.5%의 대출이자를 감면받기 위해 맡긴 돈의 이자를 최소 5%는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객 등급을 나누고, 높은 등급의 고객이 되어 은행원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려면 얼마나 더 많이 기여해야 하는지를 세뇌시킨다.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보험사의 '원본'이라는 개념은 '당신이 낸 보험금'이 아니다. 그들이 사업비로, 설계사의 마진으로, 보험사의 이윤으로 챙길 돈을 뺀 나머지 돈을 두고 당신의 원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신은 손에 잡히지도 않을 미래의 로또에 현혹되어 오늘도 보험사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투자금융의 세계는 훨씬 더 사악하다. 금융시장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매트릭스가 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계좌에는 실시간 잔고가 찍히고, 계좌 수익률은 지금 당장이라도 숫자로 확인할 수 있지만, 금융투자상품 계좌에 돈을 맡긴 이상 그들은 당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금융사가 "고객을 위하여!"라고 건배한다면 그 말은 곧 "호구들을 위하여!"라는 말과 같고, 고객을 위해 친절하게 빌려주는 신용거래자금은 고리대금이나 다름없다. 하긴 그래도 고리대금보다는 이자율이 낮다고 믿는 당신을 위해 "주식을 담보로"라는 말은 뒤로 숨겨버린다. 그들이 당신에게 빌려주는 돈은 고리대금업자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현금을 빌려주는 고위험 대출은 아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언제라도 반대매매를 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설정권자의 횡포가 권리로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신용으로 산 주식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나든 이혼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지 "당신의 주식을 언제 내다 팔 면 자신들의 이자도 챙기고 원금도 전부 회수할 수 있는가?"라는 것뿐이다. 금융시장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설령 흐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차가운 녹색을 띤 에일리언의 피일뿐이다. 금융회사는 돈을 번다. 하지만 개인은 잃는다. 개인이 돈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사고팔지 않는 것이고, 내가 산 주식이나 펀드가 수익이 날 때까지 죽도록 버티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투자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전부 금융회사에서 수백억, 수천억 달러를 움직이는 펀드매니저들이었다. 드물게 탈레반처럼 힘겹게 싸워가며 게릴라전을 벌이는 일부 개인 투자자도 존재하지만, 그들의 수익이나 규모는 너무나 미미하다. 역사적으로 금융회사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거듭했다. 메린린치나 골드만삭스와 같은 거대 금융회사는 시장이 좋든 나쁘든 항상 돈을 번다. 이들은 거의 매년 엄청난 이익을 배당하고, 내부에 유보시켜 자본금을 키운다. 특히 유럽의 메가뱅크와 달리 미국의 투자은행은 불가사리처럼 덩치를 키운다. 그것은 증권시장이 호황을 보여서도 아니고, 그들이 훌륭해서도 아니다. 투자은행은 기업이 탄생할 때 투자자금을 빌려주고, 기업이 성장기에 이르면 증권 발행을 알선하며, 기업이 성숙기에 이르면 여신을 일으켜 자본을 제공한다. 그리고 기업의 쇠퇴기에는 서슴없이 팔아치우거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에 개입하고, 구조조정과 청산에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에게 있어서 기업은 흥망성괴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영원한 봉이다. 기업은 생로병사를 거듭하고 투자자들은 이익과 손실을 반복하지만 투자은행들은 그래서 늘 이익을 낸다. 물론 때론 그들의 탐욕이 과도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와 같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이것은 언젠가 한 번쯤 주기적으로 닥치는 해일에 불과하다. 투자은행의 이름은 바뀔지라도 기능은 살아남고, 그와 관련한 거대한 이권은 불멸이다. 그래서 미국식 투자은행은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낸 최고의 괴물이다. 그뿐 아니다. 기업뿐 아니라 투자은행에게도 돈을 벌든 잃든 수수료를 부담하는 호구들이 있고, 펀드가 수익을 내든 손실을 내든, 꼬박꼬박 수수료를 내는 투자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인가 놀라운 무기로 무장하고 세상의 모든 거래를 꿰뚫고 있는 양 위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앞으로 6개월 후에 한국시장의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미국 다우지수가 하락할지 상승할지 모른다. 다만 투자자들이 왜 금융상품을 사야 하는지, 왜 그들에게 수수료를 내고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공작새의 꼬리를 치장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애널리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설명해 나가겠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업종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업종이 앞으로 호황을 누릴지 불황에 빠질지를 예측하고, 기업의 실적과 성장을 분석한다. 그들이 살피는 자료는 실로 방대하다. 거기에다 기업 탐방과 면담까지 덧붙은 그들의 자료는 마치 기업의 내일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 이들의 분석은 구조적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실적은 기업 자체뿐 아니라 업황이나 시황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기업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그들에게 보여준다. 기업의 IR 담당자가 설마 애널리스트에게 '우리 회사가 처한 구조적 문제점' 같은 보고서를 내놓을 리는 없잖은가. 더구나 기업이 분기마다 내놓는 실적보고서와 반기 연간보고서, 재무제표는 오랜 세월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거짓과 오류로 가득하다. 주식은 모호한 수식어들로 가득하고 지금의 감가상각이 왜 절적 한가에 대한 가증스러운 변명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애널리스트의 예측은 빗나가기 일쑤고, 그것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그만큼 쪽박을 차기가 쉽다. 펀드매니저들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뒤에 설명하겠지만, 펀드매니저들도 자신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스스로가 시장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치면 시장과 일체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시장평균 이상의 수익을 낸 펀드매니저는 고작 10%도 안 된다. 그나마 나은 수익을 낸 펀드매니저도 궁둥이가 무거운 개인 투자자의 수익을 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은 그들의 전적을 화려하게 포장한다. 그 얼마나 멋있는 단어인가? 금융시장의 총아, 펀드매니저! 하지만 펀드매니저의 수익은 알고 보면 당신이 만들어준 것이다. 당신이 펀드에 돈을 집어넣으면 주가는 오르고, 펀드의 수기은 증가하며, 펀드매니저의 연봉은 로켓을 달고 하늘로 올라간다. 하지만 당신이 더 이상 주머니에서 나올 돈이 없다면 당신은 펀드를 환매해야 하고, 그 결과 펀드매니저들의 수익률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당신의 계좌에서 손실이 난다고 해서 펀드회사의 수수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죽고 금융회사는 산다.
구조적 거짓말을 이기는 직관
우리는 이렇게 구조적인 거짓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의 상당 부분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무수하게 생산되는 거짓 정보들을 체로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한 기업에 대한 정보만 해도 수천 가지가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우리에게 가닥을 잡아 들려주는 목소리는 언론이나 증권사가 가공한 정보다. 대중은 이에 따라 군집화된다. 하나로텔레콤이 고객정보를 빼내 팔았다는 뉴스에 기업의 가치가 20%나 공중분해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서 제재를 받으면 실적이 나빠질 것이라는 공포 어린 시선 하나면 족하다. 군집은 집단과일 정서를 잉태한다. 시장은 늘 그렇다. 거짓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으레 그렇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투자자들은 다르다. 거짓 세상에서 중요한 맥락을 읽고 다른 사람이 놓친 사실들을 포착한다. 이렇게 집단이 놓친 진실 하나를 포착한 사람은 그 진실이 현실화될 때 큰 이익을 낸다. 그래서 굳이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시장이다. 정직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찍이 벤저민 그레이엄이 설파한 미스터 마켓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 생명체는 우리의 지성과는 다른 체계로 움직이고 우리와는 다른 언어로 말을 한다. 미스터 마켓이라는 괴물이 우리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기분이 좋아"라고 말한다면 그놈의 마음은 사실 "나 지금 자살을 준비하고 있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고, "나 지금 불편해."라고 말하면 사실은 그놈이 열 쌍둥이를 출산하기 위해 입덧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처럼 현상 이면의 것을 볼 줄 아는 직관을 키워야 한다. 어쩌면 투자란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